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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조선 사회 유지의 근간 (종묘, 사직, 대성전)

by 미소천사1004 2022. 11. 21.

  조선시대 궁궐의 건축만큼 중요시한 것이 종묘와 사직입니다.

 

  태조는 한양을 도성으로 정하고 경복궁과 함께 종묘를 짓기 시작합니다.  조선시대는 사회 유지의 중요한 덕목으로 효를 강조합니다. 통치의 정점인 왕가에서도 이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그래서 왕가에서 선대 왕들에 대한 제사는 가장 중요한 제의가 되었고 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종묘입니다.

 

  종묘는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인 동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종묘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제례를 드리는 정전입니다. 정전 내에 신위를 모시는 첫 번째 방법은 소목제입니다.  소목제란 가장 가운데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를 모시고 좌우 번갈아 신위를 모시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서상의 원칙이 있습니다.  서쪽 제1실에 태조를 모시고 차례로 신위를 모시는 방법입니다.  밑의 사진과 같이 종묘의 정전은 서상의 원칙에 따르고 있습니다.  아래는 정전의 사진입니다.  현재 정전은 보수 공사 중으로 그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없네요.  정전의 남신문은 혼백이 출입하는 곳으로 삼문의 형태를 취하며 사람은 다닐 수 없습니다.  헌관은 동문으로, 악공 등은 서문으로 출입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왕이 직접 드리는 제사는 동지가 지난 뒤에 지냈지만 현재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5월 첫째 일요일에 지내는데 이를 종묘대제라고 합니다.

 

  즉위하는 임금이 늘어날수록 모셔야되는 신위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세종조에 영녕전을 신축하여 추존 임금이나 재위 기간이 짧았던 임금들을 옮겼습니다.  조선 왕조는 500년이나 지속되었고 그 사이에 27대나 되는 많은 왕이 재위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신실을 채우기 위하여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태조 4년에 창건된 종묘는 세종조에 영녕전을 신축하였고, 현종 8년에 영녕전을, 영조 2년에 정전을, 헌종 2년에 영녕전과 정전을 증축합니다. 정전은 19칸 신실에 좌우 협실과 월랑까지 101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래는 영녕전의 모습과 신위의 순서입니다.  영녕전은 소목제와 서상의 원칙을 섞어 신위를 배열하였네요.  정전과 영녕전은 모습은 비슷하나 규모의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효는 유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공자는 전쟁과 욕망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의 보호 없이는 진정한 평화는 올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가장 약한 아기로 태어나 가장 약한 노인이 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이러한 약자의 보호 없이 문명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족의 안정 속에 어린 아기들의 육아와 노인들에 대한 봉양을 중시하게 됩니다.

 

  논어에는 제자가 3년상이 생업에 지장이 되니 그 기간을 줄이는 것이 어떠한 가하고 공자에게 묻습니다.  공자는 제자에게 마음이 편안하면 그리하라고 합니다.  그 후 제자가 물러나자 공자는 아기가 태어나 3년은 부모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줘야 생존을 유지하는데 3년상은 그에 대한 보은이라고 말하며 기한을 줄이자고 한 제자가 어렸을 때 불우하게 지낸 건 아닌가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북악산에서 이어진 녹지축은 창덕궁 응봉을 거쳐 종묘로 이어집니다.  일제 강점기시대 율곡로 공사로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의 연결이 끊어졌으나 최근에 율곡로를 지상 터널로 새로 고쳐 창경궁에서 종묘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네요.

 

  조선시대 종묘와 함께 중요시 하였던 곳이 사직단입니다.  사직단은 궁궐을 기준으로 오른쪽인 서쪽에 위치합니다.  사직단의 사는 토지의 신을 말하며, 직은 농사의 신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의 번창이 사회 발전의 기본이라 여겨 동지가 지나 왕이 직접 참여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또한 사직단은 서울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전국 주현마다 설치합니다.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평지보다 약간 높은 네모난 형태를 취합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당시의 사고를 반영합니다.  사직단의 사방에는 신이 다니는 신문이 설치됩니다.  신문은 홍살문의 형태를 띠는데. 북문은 삼문의 형태를 띱니다.  고종 시기 황제국을 선포하고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환구단은 원형입니다.  아래 사진은 제례를 드리기 전 열심히 행사 준비를 하는 모습입니다.  맨 아래는 사직단의 대문입니다.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은 유교입니다.  그래서 유교의 종조인 공자에 대한 제사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공자에 대한 제례는 성균관 대성전에서 행했습니다.   대성전 좌 우에는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고 정면에는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또한 잣나무도 심어져 있는데 중국에서는 잣나무가 희귀해 보통 측백나무와 잣나무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이곳에는 두 가지 모두 심어져 있네요.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사성(四聖), 십철(十哲), 송조(宋朝) 육현(六賢) 그리고 우리나라의 18명 성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성전 중앙 가장 높은 곳에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 적힌 공자의 신위가 남쪽을 바라보고 있고, 안자(顔子)·자사(子思)의 신위는 동쪽, 증자(曾子)·맹자(孟子)는 서쪽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동·서의 양 벽에는 십철과 육현이 각각 8위씩, 우리나라의 18현이 9위씩 나누어 배향(配享)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8현은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입니다.  또한 봄과 가을 두차례에 걸쳐 제례를 드리는데 이를 석전대제라고 합니다.

 

  아래는 대성전 뒤 명륜당 사진입니다.  명륜당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교육받던 곳입니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지방 향교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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