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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20

대학과 중용 대학과 중용은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의 하나입니다. 송나라 시대에 주희는 유학의 교육을 과거 선인들의 경구 모음인 오경 중심에서 공자 이후의 저작인 사서 중심으로 옮깁니다. 이에 따라 사서의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진시황의 분서 이후 대덕(戴徳)이 85 편을 골라 "예기"를 복원하고, 대덕의 큰 조카였던 대성(戴聖)이 대덕의 예기에서 또한 46 편을 골라 별도로 "예기"를 복원합니다. 대덕과 대성을 구분하기 위해 대덕을 대대(大戴), 대성을 소대(小戴)라고 부르는데 대덕의 "예기"를 대대례기, 대성의 "예기"를 소대례기라고 부르게 됩니다. 후한 말기 대학자인 정현이 소대례기에 주석을 달자 이후에는 예기라고 하면 소대례기를 일컫게 됩니다. 그 후 후한 말의 대학자 마융이 소대례기에 3 편을 추가, .. 2022. 11. 27.
맹자 맹자는 개혁적인 내용의 책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금서로 분류되기까지 한 책이었습니다. 조선은 맹자를 기초로 하여 정도전이 기획한 나라입니다. 이러한 맹자의 개혁성은 조선의 국정에도 나타나 조선 초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맹자는 논어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양나라 혜왕과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맹자(孟子)께서 양 나라 혜왕(惠王)을 만나셨는데, 왕이 말하였다. “노선생(老先生)께서 천 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무엇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시면, 대부(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 2022. 11. 27.
평화를 실천한 유교 제국주의 시대 중국이 아닌 유럽이 왜 식민제국이 되었을까? 마르크스, 막스베버 등은 중국이 유럽에 뒤처진 원인으로 아시아적 생산양식, 아시아적 정체성 등을 말합니다. 얼마 전 방송에 나온 유명 정치인이 아시아의 정체성의 원인으로 유교를 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정치인의 유교에 대한 이해의 천박성은 보통 외국 유학파들이 갖고 있는 이해 수준인 것 같습니다. 기원전 5세기 이후 유라시아에서는 평화를 위한 갖가지 철학과 종교가 그 처방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평화를 유지한 것은 유교가 유일하다고 할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공자가 제시한 방법은 공부입니다. 공자가 쓴 논어에서는 처음부터 공부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학식의 깊이가 높은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정당성이 유지.. 2022. 11. 27.
탁구 주요 홈페이지 ITTF (세계탁구연맹) 홈페이지 ITTF (세계탁구연맹) 선수 랭킹 대한탁구협회 2021세계탁구선수권 2019세계탁구선수권 두나무 한국프로탁구리그 월간탁구 전국 시도 오픈 대회 정보 1. http://www.ttplay.co.kr/sports/sub02_1.asp 2.http://www.koreatakgu.com/seoul/mobile/index.jsp 2022. 11. 27.
요가이야기 보통 요가라 하면 다이어트나 미용 등을 위하여 여성들이 하는 스트레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요가는 인도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를 제어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의식을 공부하고 그것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것이 요가에서의 수련(아브야사)입니다. 만일 신에게 귀의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그것만으로 모든 장애물을 뿌리 뽑을 수 있다면, 구태여 신성한 경지에 이르는 다른 방법들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원전 300~400년 경 파탄잘리는 장애의 해결을 위하여 '요가수트라'에서 요가 수행 과정의 8단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일반적인 윤리 원칙인 야마와 자기 억제인 니야마의 형식을 띤 윤리적 실천, 그리고 아사나와 프라나야마의 형식을 띤 육체적 수.. 2022. 11. 26.
은퇴 준비하기 요즘에 주위를 돌아보면 원치 않는 은퇴를 강요당하는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은퇴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들려 은퇴 이후의 생활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니 일만 하고 제대로 쉬어 보지 못해 쉰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도전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이 나이 들어 쉽지는 않아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은퇴를 못하고 나이 들어서도 일을 찾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봅니다. 사람이 소로 태어난 것이 아니거늘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가는 것은 너무 허망하지 않을까요? 현명한 은퇴를 위해 은퇴도 준비하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얼마 전 신문 지상에 은퇴 이후 노후 생활과 관련하여 실린 기사입니다. 필요한 노후생활비에 정답이 있을까요? 다다익선이라고 욕망에 끝이 있.. 202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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